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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휘는 봉선이시며 자는 순서요, 호는 상산이시고 전 충남대학교 농과대학장을 역임하시었으며 본관은 창원이시다. 선생께서는 서기 1907년 8월 11일 천원군 목천면 교천리에서 규삼씨의 장남으로 탄생하시었으며 경주최씨와 혼인하여 1남 2녀를 두시었다. 선생은 천부자질이 총명강직하시고 고결청렴하시었으며 연개 4세에 한학을 수학하실 때 문리를 터득하여 12세에 목천보통학교에 입학 4년 수료후 경복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신 다음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농촌개발에 뜻을 두신 선생은 수원고등농림학교로 배움의 길을 바꾸어 면학하시던 중 항상 한일합방을 통분하신 선생은 동지 12인을 규합하여 금강산에서 밀회를 거듭하고 조국광복을 모의하여 널리 의지 상통하는 동지를 규합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의 옥고를 겪으시고 복교 후 우등으로 졸업하신 선생은 조국광복을 위한 투지를 굽히지 않으시고 농촌지도계몽에 힘쓰며 애국사항 고취에 초지일관 하시었다. 광복 후 천안농업고등학교장을 거처 충남대학교에 전임하시어 학생과장 도서관장 교무처장 농대학장을 역임하시다가 서기 1971년 8월 1일 정년 퇴임하시었다. 서기 1980년 8월 14일 자주독립운동에 헌신노력하고 국가발전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받으시었으며 저서로는 "농촌경제학" 외 약 천 편을 저술하시고 서기 1981년 12월 11일 서거하시니 향년 76세시었다. 선생의 조국광복운동은 본래 비밀리에 학교내와 금강산에서 이루어졌으므로 현전하는 기록과 전언이 희박하여 그 업적을 다 살피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기며 선생과 같은 숨은 애국지사야 말로 조국광복운동의 귀감이 됨을 온 겨레와 더부러 밝히고자 그 공적을 이 비에 담아 영원히 기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