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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 선생은 본관이 한산이며 고려말의 명신 목은 이색 선생의 20대손으로 서기 1898년 12월 28일 철원군 수신면 발산리에서 이공 정규와 조씨 한석의 삼남으로 출생하였다. 일찌기 부친을 여의고 한학을 공부하던 중 서기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이에 통분하여 우국동지들과 항일투쟁을 결의하는 한편 서울의 친척 이덕구와 왕래하면서 그 동생 길구와 함께 조국독립의지를 굳게 다짐하였다. 마침내 서기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여 열렬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이 3.1운동을 지방으로 확산시키기 위하여 고향의 홍일선, 김교선, 박영학 등과 함께 동년 3월 30일을 기하여 수신면 발산리를 비롯하여 부근 각 부락에서 봉화 시위를 일으켰다. 동년 4월 2일(음력 3월 1일)에는 조인원 김상훈 유관순 등이 주도하는 병천 아우내 장터 거사에 합류하여 대대적인 민중궐기를 지휘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의 발포로 흐트러진 민중을 다시 모아 병천 헌병주재소 습격 단행에 앞장서서 건물을 파괴함으로서 민중의 기세를 돋구었다. 이때 지원 온 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희생자가 많이 나고 선생께서도 오른손에 총상을 입고 피신하여 은밀히 다음 거사를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서기 1919년 5월 3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고 동지 이길구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정요원으로 활약하였다. 선생은 그 뒤 망국의 한과 옥고로 얻은 병으로 고생하시다 끝내 요시찰인물로 종시하다가 서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