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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터 -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백암면 백암장터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한 1895년부터 의병의 출현이 잦았다. 1896년 2월에는 이곳 출신 박제우가 백암장에서 거병하려 하였으며, 1906년 3월에도 30∼40명의 의병이 백암 장시에서 나티-나기도 하였다. 대한제국 군대기- 해산된 1907년 이후에는 백암장에 의병이 더욱 빈번하 게 출현하여 일본인과 친일파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거두어갔다. 따라서 백 암장과 그 주변에서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지주 벌어지기도 하였다. 1907년 9월 21일 의병 100여 명이 백암 서북방면에서 의병 토벌을 위해 파 견된 일본군 부대와 교전하여 8맹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 임옥 여 부대가 백암 시장에서 일진회원 등 친일파와 순검을 처단하였다 1908년 1월과 3월 정주원 부대가 백암에 서 군자금을 거두어 간 것으로 일제의 기록 에서 확인된다 1919년 3 · 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백암에서도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했 다. 3월 31일 오후에 현 백암면인 외사면 일대 주민 3천여 명이 백암 시장에 모여 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 이 발포하자 해산하였다. 주저|월 유적지 해싫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