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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뱉간사 흙히 우리 용인을 충절의 고장이라 부르고 있습 니다. 고려시대 세계 최강의 기마병인 몽골군이 쳐 들어 왔을 때 김윤후 장군을 앞세운 용인의 처인 부 곡민들은적장살리타를사살하여 격퇴시켰습니다. 고려 말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을 지키고자 죽음 을 마다하지 않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우리 용인 땅에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화의를 반 대하 다가 결국 청나 라로 팔려가 온갖 회유에도 굴 하지 않고 죽음을 당한 추담 오달제 선생도 우리 용인의 위인으로 추앙되고 있는 분입니다. 우국충정으포 영조와 정조임금을 보필하여 조선 후기 문화 를크게 발달시킨 번암 채제공선생 역시 용인 땅에 영변하고 계십니다. 용인에서 수백 년 동안 면면히 내려옹 충절의 정신은 구한말 일제에 의해 우리의 국권이 풍전등화에 이르렀을 때도 여지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초야에 묻힌 민초들도 임옥여 · 정주원 이익삼과 같은의병장과 뭇을같이하고총 칼을들고 일본군과목숨을아끼지 않고싸웠습니다. 이한응 - 민영환 김석 진과 같은 절개있는 선비둘은 상소를 올리고 자결을 통해 일제에 항거하였 습니다. 또 여준이나 맹보순 같은 분은 민족 교육을 통해, 유근과 같은 분은 언론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여 일제에 항거하고자 하였습니다. 국권이 피탈 된 후에도 독립을 쟁취하고자히는 충절의 정신은 결묘 스러 지지 않았습니다. 여준 오광선 - 김혁 오의선 · 장형 등 많은 분들이 만주 나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방띤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3· 1만세운 동이 일어나자 수많은 우리 -용인사람들도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