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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계속하였다. 은 신하는수개월동안빈 독속에 숨어 지내기도 하였는데, 이때 부상을 치유하지 못해 평생 손 가락하나를쓰지 못하 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계속하다 1912 년용인 백암면 가창리 두펑마을에 들어선 최 〈백암 우처택〉 삼현은 일행과 헤어져 인근 학지골에 머물며 농사일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그를 착 실하게 본 이웃집의 무남독녀와 혼인하게 된다 최삼현은 1933년부터 가창리 기곡 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기를 이루었는데 일제 식민통치기간 내내 숨을 죽이고 살아 야했다. 1945년 8 15 해방 을 맞았을 때에는 해 방된 기쁨에 백암면 사무소 마당(현 백암 흩포률 우체국)에 기촉이 모두 나와 기쁨의 눈물 을흘리며목청껏만세를불렀다고딴다. 최삼현은 1953년 63세의 나이로 작고 하였고, 후손들이 묘비에 항일의병임을 새겼다. 참고문헌 • 우상표 띠|륨도 영여l 도 없이 스러져간 흔엘의병」 (용인시민신문) 잉04년 11월 4일자 • 김영섭, 「 190떤 어느 의병의 삶과 투쟁 J r장인항토문화연구 」저8잡 2.007. • 용인문화원 용인항토문회연구소 펀, 빽암맨;<:~, 2006. 찾아가는질 •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안성IC 우회전 -38 번 국도 충주장효원 방항 30km-효빽식물원 빙언으로 우회전 하차i;f 여 걸어서 10분 주변률거리 • 효빽식물원 용인시 백암연 옥산리 153카 델대, ti" 031-3: 용 -6731 권역엄 주요 유적지 해싫 •3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