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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드로문;책1 「 연펀l… • 최승강| 부부 생·7 「 뽕뽑 용인시 처요믿 원사연 문촌리 417 용인 원삼면 문촌리에는 1920∼BO년대 프로 문학이론가로 활약한 인막(安평, 본 명 安耐承 1910-?)과 ‘동양의 진뚜 라 불리는 세계적인 무용가인 최승희( 崔承喜, 1911∼1969)가 1931년 결혼을 한 후 신접살림을 하였던 생가가 남아 있다. 서울 출신 의 최승희와 안성 출신의 안막이 용-인 원삼면에 신혼의 둥지를 틀게 된 것은 안막의 양모 오옥경앓玉맺10이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당시 안막괴- 최승희의 결혼은 r조선일보」 1931년 5월 5일자 “반또의 무희 무명의 청년과 결혼”이라는 제하의 기 사가 실린 것처럼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최승희는 대중들에게 최고의 인 기를 얻고 있던 스타였다 r별건곤」 제40호(1931.5)의 기사는 최승희가 결혼 후 무용 계를 떠나지 않고, 남편의 지도와 협력으로 순Ct폐프롤레타리아 예술가의 임무를 다 히는새로운무용수립에적극적노팩을하기로했다며독자들을안심시키고있다. 안막은 1920년대 도표 유학시절 ‘무산자사{無塵者fffi±)’ 에 관계하면서 프로문학운 동을 시작하였다. 귀국 후 임화 · 감남천 등과 함께 카프(KARF) 소장피를 형성, 제2 차 방향전환을 주도히였다. 최승희는 한국의 전통무용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독자 32 . 발로 찾아가는 용인독엉웅동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