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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국 선생은, 충남 보령(保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이병철(李秉喆)·고광춘(高光春)·한기석(韓基錫) 등 8명과 함께 보령군 청소면(靑所面) 성연리(聖淵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주민들을 규합, 진두산(陳頭山)에 모여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인 후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할 계획을 추진하던 중 4월 12일에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5월 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8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강영국 선생은, 충남 보령(保寧) 사람이다. 1919년 4월 10일 김사구(金思九)와 함께 많은 사람을 선동하여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해 시위운동을 하기로 계획하고 꽃놀이를 가장(假裝)하여 보령군 청소면(靑所面) 성연리(聖淵里)에 사는 신태중(申泰重)의 집에 모인 임경진(林庚鎭)·이병철(李秉喆)·고광춘(高光春)·박제건(朴齊乾) 등에게 "근래 다른 지방에서는 산 위에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 지방에서 만세시위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조상의 은혜를 망각한 처사이다. 이제 우리가 주모자가 되어 진두산(陳頭山) 위에 봉화를 올리고 시위운동을 할 것인데 이에 가담하라"고 고무(鼓舞)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 해 5월 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6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다시 8월 7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이명종 선생은, 충남 보령(保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6일 충남 홍성군(洪城郡) 광천면(廣川面) 광천리(廣川里)에서 동지들과 조선의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동년 3월 8일에 큰 글씨로 쓴 선언문 2매를 작성하여 광천(廣川)장터와 옹암리(瓮岩里)에 게시하고 주민들을 규합하며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 다수를 등사하여 가가호호 및 광천(廣川) 장날에 운집한 군중에게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동년 4월 28일에 공주지방법원에서 지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아 동년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자료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