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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 선생은, 1937년 7월 고향인 홍성군 고도면(高道面)에서, 일본 교토(京都)에 체재할 당시부터 친교가 있던 같은 마을의 송길한(宋吉漢)과 함께 조선독립과 신사회 건설에 대해 협의하고 함께 활동하기로 약속하였다. 같은 고도면 출신의 송길한은 1933년 일본으로 유학해 활동하다가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기 위해 1937년 6월 18일 귀향했으나, 그해 7월에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나 결국 중국행을 포기하고 홍성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운동 전개를 모색 중이었다. 이에 송길한은 당시 고도면에 있는 신안서당(新安書堂) 교사 박영달(朴英達)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같은 해 8월경부터 서당의 생도들을 중심으로 창가(唱歌)나 옛날이야기 등을 통해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7월 23일경 송길한이 방문했을 때 허경은 식민지 조선의 사회제도의 모순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모순인 사회 상태를 타파하여 진실로 자유 평등한 인류애(人類愛)의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위해 활동해야 함은 우리 청년의 책무”라고 합의하였다. 같은 해 8월 23일과 9월 상순경에도 송길한과 회합하여 조선의 독립 및 신사회 실현을 위해 함께 제휴하여 활동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9월 중순경 송길한은 국내 북부지역과 만주를 돌며 동지를 규합하고, 허경은 서울에서 중학교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장차 홍성으로 돌아와 조선독립과 신사회 실현에 매진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38년 5월경 송길한 등 6명과 함께 홍성경찰서(洪城警察署)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7월 16일 대전지방법원(大田地方法院) 홍성지청(洪城支廳) 검사분국(檢事分局)에서 박영달과 송길한만 예심에 회부되고, 허경 등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자료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