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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 수호와 인재 육성에 힘기우리니 모두가 이 고장의 사표로 높이 받들었다. 선생은 부인 능성구씨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니 효성이 지극한 장남 경호는 아버님의 옥고에 상심하여 끝내 병으로 돌아가고 차남 성호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몸바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청년운동에 헌신하였다. 장하고 빛나도다. 조상의 얼과 음덕이 후손에 이어짐이여. 오늘날 선생의 내외손이 모두 번창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조상의 뜻이 가풍으로 면면히 계승되어 증손인 광휘는 청백리 표창으로 이 나라 이도의 본보기가 되었고 손인 근환은 육군 소장으로 국방의 중직인 사단장 정보사령관을 역임 두 차례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각 세계요로에서 크게 활약중이다. 선생께서는 서기 1943년 계말 12월 24일에 70세로 천수를 다함에 서산땅에 모셔졌다가 앞서 서기 1930년 경오 1월 29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