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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노사문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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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한은 충청남도 공주(公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사전에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그는 주위의 존경을 받던 유림(儒林)으로서 평소부터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차에 3·1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1919년 4월 1일 고향인 석송리(石宋里)에서 동리사람 수백명을 모아놓고 만세운동이 취지를 설명하고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정오 무렵에는 시위군중을 이끌고 석송리에서 광정리(廣亭里)까지 계속 시위하였으며, 시위군중이 쇠스랑·곡괭이·삽·몽둥이 등으로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는 등 만세시위가 치열해지자 시위군중의 기세에 눌린 주재소에서는 공주경찰서에 연락하여 이날 오후 4시경에 헌병의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30여명의 만세시위군중이 석송리 길목에서 일경이 타고 오던 자동차를 가로막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한편 일본경찰을 좌우에서 밀고 당기며 일본헌병 군조(軍曹)가 차고 있던 군도를 빼앗으려고 하면서 이날 밤까지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를 계속하다가 체포되었다. 경성복심법원의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의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의사발동이므로 범죄가 아니라고 법정 투쟁하였으나, 이해 12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