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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구는 충북 청원(淸原)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청원군 낭성면(琅城面)에 거주하였으며 미원면(米院面)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미원면의 만세운동은 그 동원된 수와 규모에 있어 청주에서 일어난 3·1독립운동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만 하였다. 1919년 3월 30일 이곳 미원 장터에서는 오후 1시부터 1,000여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앞장서서 시위운동을 주도한 14명이 붙잡히는 바람에 군중은 더욱 격앙되어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를 습격·파괴하였다. 이때 그는 신정식(申鼎植)·서정열(徐正烈)등과 함께 지팡이와 몽둥이를 손에 들고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장꾼들에게 정의의 독립만세운동 대열에 참가할 것을 설득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