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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구는 충청북도 청원(淸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청주군(淸州郡)내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미원면(米院面) 독립만세운동을 이용실(李龍實)·이수란(李水蘭)과 함께 주도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부터 1천여명의 시위군중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자, 일본 경찰은 태극기를 빼앗으며 시위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제지가 심할수록 더욱 거세게 독립만세시위를 계속하자, 일본 경찰은 선두에 서서 지휘하던 그를 주재소에 감금시켰다. 이에 격분한 1천여명의 시위군중은 더욱 분개하여 주재소로 몰려들어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고 고창하며 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과 장지문을 부수고, 정문 기둥을 쓰러뜨리고 담을 헐어버리는 등 격렬한 시위로 변하였다. 이에 미원 주재소에서는 청주경찰서에 구원을 요청하여 응원부대가 도착해서야 겨우 시위가 중단될 정도였다. 이때 그와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이수란은, 가지고 있던 담뱃대로 주재소장을 때리려고 대들었고, 성규원(成奎垣)은 양민학살을 항의하였으며, 윤인보(尹仁甫)는 헌병이 가지고 있던 칼을 빼앗으려고 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위급함을 느낀 일본 헌병의 발포로, 즉사 1명, 부상자 3명이 생겼고, 현장에서 주도자 등 14명이 체포되었다. 결국 그는 그해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확정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