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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이시고 1871년 신미8월 13일 출생하시다. 품성이 인자하여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시고 부군을 정성으로 보필하며 4남 2녀를 주 안에서 양육하고 진실한 신앙인으로 1947년9월 22일 소천하시다. 장로님은 한말의 격동기에 개화문명의 신사조와 기독교를 적극적 수용하고 1907년 추 금당장로교회를 창립 복음전파에 전력하든차 소명을 받아 1916년 평양신학교에서 수학하시며 전도사로 시무하셨다. 1923년 좀 금당교회 초대자로장립을 하시고 1924년 3월 예배당을 신축봉헌하고 강도사로 사회에 진력하셨다. 장로님은 한일합방의 민족적 울분을 금치못한 차제 기미3.1운동에 적극참여하여 3월 4일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비장한 각오로 3월 6일과 7일 기독교 동지를 규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추진중 8일 기밀누설로 왜경에게 체포되였다. 압송도중 삼산사장에서 군중을 향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여 민중을 감동 의분케함은 실로 통쾌한 거사로서 기 의인의 기개와 애국애정에 감탄할뿐이다. 공주법원에 수감중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4월 1일 판결 징역2년에 해당되는 조선태형 90대를 수형하시다. 이는 죽음을 뜻하는 극형으로서 평생 여독으로 고생하셨다. 장로님은 체포로 인해 의분한 동지들은 3월 29일 마산 새장터에서 독립만세 민중시위를 강행하셨다. 장로님은 일제감시하 박해를 당하면서 신사참배반대운동등 불굴의 항일투사로 조국독립에 이바지하시다. 환희의 조국광복을 맞아 손수 태극기를 만드시고 만소소리 드높은 승리의 기쁨도 촌시뿐 애석하게도 1947년 5월 14일 천국에 가시다. 후세는 기 사적을 약술하고 이 비를 건립하면서 장로님의 숭고한 민족정화와 기독교의 신실한 신앙을 기리 받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