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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인멸의 장소 여기는 대학살을 감행한 후 증거인멸을 위해 유품들을 불태웠던 장소이다 예비검속 구금장소는 협소했다. "넓은 장소로 간다"고 유인하여 희생자들은 생활 소지품들을 모두 트럭에 실었다.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석) 새벽 트럭에 실려가며 고향마을을 벗어나 이곳 길을 향했을 때, 그제서야 자신들의 죽음을 예측했었는지 신었던 검은 고무신들을 벗어던지며 가는 길을 가족에서 알리려 했었다. 길위에 검은 고무신들을 따라 유족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곳에서 담요, 베개, 옷가지, 허리 띠, 쌀, 부식 등 희생자들의 소지품이 모두 불에 타고 있었다. 그날의 역사적 사실을 자각함은 희생자의 원혼을 추모하는 일로서, 당시에 남편 찾아 달려와 현장을 목격했던 이상숙(1925년생)여사가 일금 4,500만원을 지원하여 재현된 시설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