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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인 일경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우편소 등을 파괴하는 한편 전신주를 불태우고 면사무소의 공문서를 파곤하던 중 일경의 잔인한 폭행으로 현장에서 중태에 빠져 그후 수일만에 깨어나셨다. 동년 3월 30일 원곡면 가천리 뒷산에서 안성주재 일본경찰서장의 훈화가 끝나기도 전에 일본군인 백여명이 몰려와 면민들 중에서 만세를 부르고 관청을 방화 파괴한 시위주동자를 색출하고자 위협하였으나 끝내 나오지않자 모두 곤봉으로 난타하며 고문을 가했다. 이에 격분하여 공은 지사 이병섭 조경수 홍승보 등과 격렬하게 항거하시다가 일군에 의해 무참히 죽음을 당하시어 장엄하게 순국하신 이때 나이 38세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조국의 번영과 함께 그때의 애국충절의 높의신 뜻을 기리는 나라의 뜻으로 1992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으시니 이는 민족의 귀감이요 충효가문의 영광이라. 공은 서기 1919년 기미 4월 30일 순국하시며 슬하에 2남 1녀를 남기셨으니 배위 진주류씨 관수는 1969년 9월 30일에 타계하시어 이곳 만년유택에 합봉영면하셨다. 서기 1995년 정부의 애국지사묘소단장 지원계획에 의해 이 비를 세우며 공의 애국충절의 큰 뜻을 함게 기리노라. 서기 1995년 5월 28일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