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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木의 由來碑(신목의 유래비) 중종조때 영의정 시 문익공인 동래인 정광필의 증조는 후덕으로 인성이 높았던 휘 龜齡(구령) 결성현감이다. 그 후손이 경향 각지에 현영세거하는바 서울에서는 홍주병오순난장사비문을 지은 정인보선생 후손이 있고 홍성지역에서는 후손이 번족하게 살고 있다. 호 삼수정인 정현감이 1425년 봄 전임에 앞서 기념으로 심은 槐木(괴목, 왜나무)의 수령이 510여년이 되던 1935년 여름 왜경 결성주재소 주임 山口(야마구찌)가 나무가지를 치고나서 졸지에 벙어리가 되어 귀일하였다. 모진 왜경에게까지 신벌을 내린 영험이 발현된 후부터 역대 주재소 주임들이 계속 신목제를 지내온 유서깊은 명수가 되었다. 이 나무에 대한 신목적 緣起(연기)는 조선 중기떄의 전설에서 비롯되었지만 광복후에도 모 방위병이 전지를 하고나서 신목의 버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배관제 노인회장이 선두에 나서 신목제의 연례행사를 추진하자 그 아들인 상칠씨가 신목의 영흠을 깊이 체득하고 우선 신목유래비를 세울것을 제창하며 기금 일부를 성금으로 내놓았다. 歲和年豊壽福康寧(세화년풍수복강녕)을 비는 신목비가 세워진다는 여론이 돌 무렵 결성에 들렀던 임동권박사가 이 화제를 듣고나서 민속적 기념수로서의 가치를 고양하자 신목의 영리를 숙지하던 문화재보호회원및 농요보존회원 그리고 상록회원들이 誠心加賽(성심가새)해옴으로 결성민민 일동이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 정구령현감의 영험과 신목의 영험 그리고 전국일위의 농요대창이 삼위일체격으로 결성을 길이 빛내는 등촉이 되기를 간절히 면민은 기원한다. 1996년 8월 일. 홍주형토문화연구회장 배동순 짓고, 경주후인 김세환 쓰고, 결성면민일동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