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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차제요 자는 대제이시다. 시조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이시고 경순왕 후예로서 중시조 휘 인관은 고려 예종조에 검교태자 태사이시다. 공의 18대조 휘 자수는 공민왕조에 문과에 급제 대사성 충청관찰사로 죽음으로 충효의 절개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분이시다. 15대 조 휘 영유는 대사성 전라 경기 관찰사 좌리원종공신으로 기로소에 입사한 원로공신에 시는 공평이시다. 14대 조 휘 기는 평택현감으로 청백리로 선정한 현조이시고 5대 조 휘 한기는 증 가선대부에 공조판서이며 고조 휘 국주는 가선대부에 동지중추부사이시다. 고 휘 상림은 경학이 높아 증 통정대부 중추부지사로 배 경주이씨와의 슬하에 선제 후제 완제 팔제 차재 5남이시니 공은 5남으로 1871년에 탄생하시다. 공은 온유내강의 성품으로 유가학풍과 강당지도를 숭상하고 목간돈종이 지극하시었다. 기미 독립만세운동이 발발하자 재종질 동운 사종질 동하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자 은밀히 계획을 세워 경주김씨를 주축으로 인근 부락의 유지들과 합세하여 동년 4월 7일 밤 동봉산 모산고개에서 5백여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공은 선봉에서 조선독립을 찾자는 사자호의 외침과 동시에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와 경찰지서로 행진하니 산상은 대낮같이 밝고 천지가 진동하는 듯 하였다. 면사무소에 당도 면직원들도 조선민족이니 만세운동에 합세하라고 외치니 직원들은 피신하여 금고 서고 집기 등을 불태워 버렸다. 이때 홍성에서 온 헌병과 경찰이 총칼로 제압하니 주동한 인물들은 공주지법에 압송되어 공은 태형 90대를 선고받고 출소 후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병마와 싸우다 슬하에 동규 동인 동천 3남을 두고 70수로 졸하시다. 광복 후 직손 준환 주복 기훈 등이 수년간 공의 사료를 수집 당국에 수훈을 신청 1997년 애국지사로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니 공의 평생 걸어온 위대한 애국정신은 국가발전에 초석이 되었기 홍성군 홍성보훈지청의 협조로 공의 높은 애국충정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금석에 불후토록 새기는 것은 공의 유훈을 영원히 후예의 정신 속에 살아 숨쉬며 어지러짐이 없기를 바랍니다. 2007년 4월 1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