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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민(준희)공의 독립운동사. 아름답고 평화로운 대한의 나라. 흰색옷을 즐겨입던 백의의 민족. 남을 침범하지 않고 평화와 불굴의 상징인 무궁화를 가슴과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민족. 이 아름답고 평화가 출렁이는 대한의 강토에 남쪽섬나라 일본은 군경을 앞세워 총칼로 대한의 전강토를 빼앗고 말과 이름까지를 박탈하는 잔인무도한 행위를 자행하에 살상고문 투옥등으로 이 강토를 피로 물들게하였으니 전민족은 이에 맨손으로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나라안과 나라밖에서 전개하여 캄캄하 어둠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구해내고자 피를 흘리며 목숨걸고 죽음으로서 일분군경과 까우고 싸우며 만세운동을 하던 그 시절에 우리 남씨 가문의 남동민(준희)공께서도 독립만세운동 대열에서 민족자주와 민족해방을 위하여 파주군지역 광탄면의 조무쇠, 이인옥, 정천화 정갑석 이기하등과 함께 1919년 3월 27일에 광탄면 동거리에서 면민 수백명을 인솔하여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본군경에 항거 투쟁하시다 일본군경에 체포되시여 전국 각지에서 행하여진 독립운동 거사에 찬동하여 정치 변혁을 목적으로 안영질서를 방해하였다는 죄명을 8개월의 징역을 치르셨으며 당시 재판장에서 공께서는 일본놈들이 우리 조선사람을 재판할 권리가 있느냐고 항의하고 불법이라고 상고하시는 과정에서 매를 극심하게 맞고 고문을 당하시므로서 생식기능 불능으로 그후 자식을 갖지 못하셨으며 출옥후에도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하시다 재투옥되시었으나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일본인들이 죄명을 산림법위반으로 기록하여 놓은 총무처 문서 기록보존실 지문기록부에 있다. 특히 공은 효심이 지극하시어 서울에 사실때 금촌역에서 30여리나 되는 거리를 한번도 거르지 않고 도보로 제물을 등에 지시고 오셔서 제사를 지내시는 효행을 실천으로 보이셨고 유산으로는 샛터마을의 집과 밭 그리고 배기의 논을 가지고 계신공의 공의 유덕을 기로고 보전하는 의미에서 후손 누구도 어떤 명목으로 나의 따을 매각처분해서는 않되며 선조의 땅을 팔아먹는 행위는 조상에게 죄를 짓는 원죄임을 알아야 될것이다. 후손들은 공의 독립자주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가문을 빛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하는 의무에 살아야 된다. 1993년 8월 15일 광복 48주년 아침에 남상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