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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연천 항일운동 확인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는 연천지역의 항일독립운동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연천 출신 의병과 이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 의병장이 다루어지지 않았고,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론되지 않은 면도 더러 있다. 연천군의 여러 지역이 독립 운동 사적지로 소개되지 못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구석기시대 등 전통시대의 유적지에 대한 조사·보고에 비해 연천지역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조사·보고는 홀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늦게나마 연천지역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 하면서, 연천인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 그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연천지역의 의병투쟁과 연천 출신의 의병에 대해서 검토하고, 다음으로 연천지역 각 면의 3·1운동을 추적해보겠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연천인의 항일독립운동과 그 특징을 고찰해보 고자 한다. 2. 연천인의 의병운동 의병투쟁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전개되었는데, 연천지역에서의 의병투쟁은 후기에 전개 되었다. 연천에서는 일제의 경복궁 점령과 을미사변과 을미개혁 등에 항거하여 일어난 전기 의병기, 을사늑약의 체결 등에 항거하여 일어난 중기 의병기에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지 않았 다. 그렇지만 고종황제의 퇴위와 군대해산 등에 항거하여 진위대의 군인들이 대거 의병항쟁 을 전개한 후기에, 연천지역에서는 대표적인 의진이 기의하거나 근거하였고, 연천 출신의 인물들이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1일 일제가 군대를 해산한 후 서울의 시위대와 각지 진위대의 군인들이 대거 봉기하였다. 연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화도에서는 8월 9일 분견대 소속 유명규(劉明奎)·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