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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연천군의 연혁 17 조선왕조는 개국과 동시에 지방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태조 때에는 주로 속현(屬縣)에 지방 관을 파견하거나, 속현을 수령이 파견된 주현(州縣)에 통합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사실 속현 을 없애고 그곳에 감무를 설치한 것은 앞서 살펴본 대로 고려 중기부터 시작되었다.10) 감무를 파견하는 등 속현을 폐지하는 일은 조선이 건국된 뒤부터 더욱 강화되었다. 1413년(태종 13) 조선은 전국을 8도(道)로 나누고, 그 아래에 주․부․군․현(州府郡縣)을 설치 하였다. 이와 더불어 조선은 전국의 주민을 직접 지배하기 위하여 작은 군현을 통합하여 380여 개의 고을로 정비하고, 모든 고을에 수령을 파견하였다.11) 이처럼 마련된 지방제도는 큰 변화 없이 왕조 후반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왕조가 이렇게 지방제도를 정비하는 와중에 연천지역에 소재한 고을도 변동을 겪게 된다. 전국이 8도 체제로 개편되면서 연천에도 현감이 파견되었다. 이때 들어 그동안 장주 또는 연주로 불렸던 연천지방의 이름이 마침내 연천(漣川)으로 바뀌었다.12) 1414년(태종 14)에는 연천현과 마전현을 합쳐 마연현(麻漣縣)으로 하였다가, 2년 뒤인 1416년에 분리하였다.13) 그러다가 1662년(현종 3) 12월 연천 출신 이애립(李愛立)이 전패(殿 牌)를 훔친 사건이 발행하여 악역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연천현을 혁파하고 마전군에 통합시 켰다가,14) 1684년(숙종 10)에 복구되었다. 조선 초에 정비된 지방제도는 왕조 내내 큰 변동이 존속되어 오다가 1895년(고종 25) 6월에 와서야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종래의 8도를 폐지하고 23부(府)를 설치하였다. 부 이하 의 행정구역은 모두 군으로 단일화하여 총 337개 군을 23부 아래 분속시켰다.15) 하지만 철저 한 사전 준비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23부제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1년 만에 기존 제도로 복귀하고 만다. 다시 한 번 1914년에 와서 지방제도가 크게 바뀌었다. 종래 13도 12부 317군이 13도 12부 220군로 개편되었다. 도 및 부의 편제는 변동이 없었지만 기존 317개에 달하던 군이 220개 10) 이존희, í��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연구��, 일조각, 1990, 190 191쪽. 11) 이수건, ��한국중세사회사연구��, 일조각, 1985, 409 410쪽. 12) ��태종실록�� 권26, 태종 13년 10월 15일. 13) 연천군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128쪽. 14) 위의 책, 129쪽. 15) 류영익, 「제2차 개혁: 갑오경장」, ��한국사�� 40, 국사편찬위원회, 2000, 237 2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