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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조사 성과 및 보존·활용 방안 143 2. 보존·활용 방안 연천군은 항일운동의 주요 현장이었다. 특히 연천지역은 항일의병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본 조사는 더 이상 훼손·파괴되기 전에 항일운동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기록 으로 남기고 보존대책을 세워 문화관광자원과 교육자료로 적극 활용할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조사 결과 모두 23곳의 항일 유적지가 확인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교육구국운동 1곳, 의병운동 11곳, 3·1운동 4곳, 사회운동 2곳, 독립운동가 5곳 등이다. 이 중 독립운동가 유적 지 5곳 가운데 항일의병과 관련된 장소도 4곳이나 된다. 따라서 연천군이 의병운동의 중심지 답게 조사된 총 23곳 유적 중 항일의병 관련 유적지가 무려 15곳이나 되었다. 이번에 조사된 항일운동 유적지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지금은 건물과 같은 실물이 존재하 지 않는다. 관련 시설이 남아있는 경우는 신서면 내산리(內山里) 심원사(深源寺) 경내 의병 5인 묘역, 미산면 유촌리(柳村里) 의병장 심상우(沈相禹) 무덤 두 곳뿐이다. 현재 의병 5인 묘역은 잘 정비되어 있어 따로 보존방안을 세울 필요가 없다. 다만 심상우 무덤은 그의 조카인 심준섭이 관리하고 있지만, 그의 나이가 고령임을 감안하면 연천군 차원 에서도 보존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연천군 문화재로 지정하여 연천군에서 직접 관리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유적지는 당시 시설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가능하면 유적지마다 안내판이 아닌 좀더 항구적인 표지석을 세우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을 한꺼번에 하기에는 재정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때문에 유적지 가운데 역사적인 가치가 큰 유적지를 순차적으로 선정하여 표지석을 세우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연천의 3·1운동은 1919년 3월 21일 백학면 두일리(斗日里) 장날에 모인 주민들의 만세시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들은 해산하지 않고 인근 지역으로 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처럼 두일리 장터는 연천지역 3·1운동의 대표적인 무대였다. 구한말 의병운동 때에도 이 곳은 군수품 조달처이자 전투지였다. 그만큼 두일리 장터는 항일운동의 주요 현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