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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연천 항일운동 미산면 아미리(峨嵋里)는 의병장 왕회종(王會鐘, 1879 1925)이 살았던 곳이다. 아미리는 원래 마전군 군내면 지역으로, 1918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장양리(長楊里)와 냉정리(冷井里) 를 합쳐 아미리라 하여 연천군 미산면에 편입되었다. 왕회종은 숭의전(崇義殿) 참봉(參奉)으로 근무하다가 1907년에 그 직을 사임하였다.132) 그는 1907년 8월 무렵 의병을 일으켜 80명 정도의 의병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9월경 장단에 서 양주 출신의 김진묵(金溱默) 부대와 합세하여 김진묵을 대장으로 하고, 자신은 부장이 되었다.133) 그 뒤 왕회종은 양주, 파주, 적성 부근에서 김진묵 등 100명과 활동하였다. 그는 김진묵과 함께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적성, 삭녕, 안협, 토산 등지를 돌면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400여 명의 장정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부대는 보병 제51연대 보병 1개 중대, 산포병 1개 소대, 공병 1개 분대 등으로 구성된 일본군 토벌대의 공격으로 타격을 받고 도피 하였다.134) 1907년 10월 무렵, 철원에 머무르던 왕회종은 김진묵 등과 함께 일본군 김화 및 금성수비대의 추격을 피해 경원가도의 동쪽인 춘천, 양구 등지에 진출하여 활동하였다.135)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뒤 임진강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총대장 허위(許蔿)가 체포되어 순 국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만주에서는 청년교육에 힘쓰다가 의병활동 중 입은 부상이 악화 되어 1925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136)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무덤은 고향인 아미리의 뒷산에 있던 문중의 선영에 있다가 1969년 10월 20일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132) 한국고전번역원, í��국역승정원일기��, 1907년 1월 23일(음력). 133) 경기도사편찬위원회,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 경기출판사, 1995, 92쪽. 134)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폭도사편집자료」, ��독립운동사자료집�� 3, 1971, 666쪽. 135)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위의 책, 707쪽. 13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 1, 743 7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