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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연천군 항일운동 유적지 111 차탄리가 되었다. 차탄리 남감리교회는 현 연천군청에서 철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약 5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였다. 현 감리교회는 피난길에서 돌아온 남감리교회 교인들이 세웠다. 3·1운동 이후 가장 왕성하게 대중운동을 전개한 부분운동은 청년운동이었다. 청년단체는 1920년대 들어 주로 청년회라는 이름으로 전국 도처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들 단체 는 초기만 해도 계몽적, 교육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1920년 중반이 되면 정치적 성격을 앞세우는 양상으로 변해갔다.126) 청년단체가 연천지역에도 많이 창립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청년단체가 엡윗청년회였다. 엡윗청년회는 감리교의 세계적인 청년운동(단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97년 서울 정동감 리교회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뒤 전국 곳곳에서 세워졌다. 1922년 창립된 연천엡윗청년회 127) 는 야학운동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의 활동 공간이 바로 남감리교 회였다.128) 군세일반 지도 1. 연천군 군내면 차탄리 ⊕는 교회 표시임 조사 의견 일제 때 연천지역의 사회운동단 체 유적지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실정에서 연천엡윗청년회 유적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 하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엡윗청년회의 활동을 알리는 표지석이나 안내판을 옛 차탄리 남감리교회 입구에 세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126) 경기도사편찬위원회, í��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 1995, 767 774쪽. 127) 「엡윗청년회 조직」, ��동아일보�� 1922년 4월 20일. 128) 「엡윗청년회 강연」, ��동아일보�� 1922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