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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1940년대 일어난 ‘무등회 사건’은 무엇인가요? 11·3 학생독립운동 정신의 계승 36 1) 제1차 무등회 사건 광주고보생들이 중심이 된 학생독립운동은 1940년대에도 계속됩니다. 1940년대 광주서공립중학교 학생들에게 계승되는데, ‘제2차 11·3 학생독립운동’ 이라 불리는 ‘무등회 사건’이 그것입니다. 광주고보가 광주서공립중학교로 명칭이 바뀐 해인 1938년 5월 기환도·나금주 등 이 독서회를 조직합니다. 1939년 5월 결성된 ‘무등회’는 이 독서회를 계승하였습니 다. ‘무등’은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행동목표를 정 하였습니다. 1941년 12월, 무등회 회원이던 유몽룡이 매주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장에 일제의 식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적었다가 문제가 되어 퇴학당하였지만 조직은 탄로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담양의 무정보통학교에 근무하던 주만우가 조선 인 동료 교직원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다 일본인 교사의 밀고로 검거되면서 조직 이 드러나게 됩니다. 1942년 1월 주만우를 비롯한 유몽룡·강한수·남정준·윤봉현· 윤재춘·김동수 등이 구속되고, 만주로 도피한 기원흥도 잡혀왔습니다. 유몽룡은 징 역 1년 6월, 주만우는 징역 1년을 선고받게 됩니다. 이를 ‘제1차 무등회 사건’이라 부릅니다. - ‘서중혼’으로 무장하고 영웅적인 선배들의 얼을 전교 학생들에게 심어줄 것 - 일제식민지정책 반대투쟁에 젊음을 바칠 것 - 주체성을 기르기 위해 독서운동을 전개할 것 - 동지를 위해, 보안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