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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서울의 1차 시위는 언제 일어났나요? 광주를 넘어 전국·해외로의 확산 28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의 불길은 전남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나갔습 니다. 전국 확산의 결정적 계기는 12월 초부터 시작된 서울에서의 대규모 학생 시위였습 니다. 광주에서 학생시위가 발발하자 11월 7일 중앙청년동맹과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서 대표를 파견하였습니다. 이들은 당시 신간회와 광주청년동맹의 간부였던 장석 천·국채진 등을 만나 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대표로 광주에 파견되었던 권유근은 경신학교 4학년생으로 조선학생전위동맹 회원이었습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중동학교·경성제일고보의 대표학생과 만나 서울 시내 중등학교 학생들의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합니다. 그 들은 각 학교별로 조직된 비밀 독서회 간부를 소집, 광주학생운동의 진상과 결과를 상세히 전달하는 등 항일시위운동의 조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합니다. 이들은 “검속된 광주학생 동지를 즉각 탈환하라”, “식민지 노예교육을 반대하라” 등의 격문을 인쇄하여, 12월 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에 경성제대를 비롯, 경신학 교·중동학교·중앙고보 등에 뿌립니다. 12월 5일에는 경성제이고보가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6일에는 중동학교도 시위 와 함께 동맹휴학을 단행합니다. 7일에는 경성제일고보가 광주학생들의 즉시 석방 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며 맹휴를 감행합니다. 그리고 9일부터는 경신·보성고 보·중앙고보·휘문고보 등 학생 2천여 명이 시위에 참가합니다. 12월 9일의 대시위는 13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서울지역에서만 1만 2천 여 명의 학생이 시위 및 동맹휴학에 참여하였는데, 이를 ‘서울에서의 제1차 시위운동’이라 부릅니다. 이로 인해 1,400여 명이 체포되어, 45명이 구속되고 35명이 재판에 회 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