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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광주에서 타오른 항일의 불길은 먼저 인근 전남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일제의 보도통제로 타 지역은 떠도는 풍문으로만 소식을 접할 수 있었지만, 전남 지 역의 학생들은 오고가는 사람들에 의해 광주의 소식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목포와 나주뿐만 아니라 전남지역의 여러 학교에서도 11월 말부터 이듬해 2월까 지 시위 또는 맹휴투쟁이 벌어졌습니다. 11월 30일에는 송정리의 공민학교 학생들 이 시위를 전개하다 9명이 잡혀가자 12월 2일부터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함 평농잠보습학교와 함평보통학교 학생들도 12월 12일 장날을 기해 시위를 준비하였 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4명이 구속됩니다. 이에 학생들은 동료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 며 동맹휴학을 단행하였습니다. 1930년 1월 18일, 강진 대구보통학교에서는 전교생이 광주 시위를 지지하는 격 문을 뿌리고 동맹휴학을 단행하였습니다. 19일에는 창평보통학교 5·6학년 학생들 이 격문을 뿌리고 만세시위를 계획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17명이 검거되었습니 다. 여수에서는 1월 23일 여수보통학교 학생들이 격문을 살포하였습니다. 1월 25일 에는 여수수산학교 이용기 등 7명의 학생이 검거되자, 학교는 이를 빌미로 12명을 퇴학시키고 9명을 정학시켜버립니다. 학생들은 1월 28일, 퇴학·정학시킨 학생의 복교와 검거된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단행하였습니다. 2월 3일에는 담양보통학교 학생들이 조회시간에 만세를 부르려다 발각되었습니 다. 보성보통학교에서도 2월 18일 5·6학년 학생들이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 루지 못하고, 주모자로 광주고보 백지동맹 퇴학생이었던 김기수와 보통학교 학생 3 명이 검거되었습니다. 2월 25일에는 순천농업보습학교에 1학년생들이 동맹휴학을 단행하였습니다. 전남의 다른 지역 학교의 참여는 어떠 했나요? 광주를 넘어 전국·해외로의 확산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