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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학교 당국의 공식적인 단체 귀가 허락이 떨어지자 300여 명의 학생들은 농기구실 과 운동기구실의 자물쇠를 부수고 괭이·목검·장작·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후 스크럼 을 짜고 교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학생들이 시위대로 돌변하자, 당황한 교감과 교사들이 학생들을 만류하지만 역부족 이었습니다. 그때가 오후 2시경이었습니다. 시위 대열은 김향남·김보섭·김상환 등 기골이 장대한 상급생들이 앞장을 섰고, 하 급생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교문밖에는 최태주의 연락을 받은 광주농업학교 학 생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박수로 환호하면서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교문을 나선 시위대는 행진가를 부르며 시내로 나아갔습니다. 시위 행렬이 지날 때 시민들은 각목이나 장작을 나눠주며 환호하였고, 어떤 사람은 팔려고 사다놓은 나무지팡이 10여 개를 던져주기도 하였습니다. 호떡장사를 하던 아저씨는 호떡을 나누어주었으며 감 장수는 감을, 떡 장수는 떡을 나누어주며 학생 들의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시위대는 광주중학교 쪽으로 진출하다가 경찰이 막아서자 방향을 바꾸어 충장로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놀란 일본 상인들은 부랴부랴 문을 닫았고, 겁에 질린 일본인 들은 숨을 곳을 찾기에 바빴습니다. 대책회의 이후 학생들의 시내 투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나요? 11월 3일, 그 날 21 신천지에 휘날리는 우리 동포야 길이길이 기다리던 오늘이 왔구나 무등산에서 단련한 기술로 용감히 적군을 물리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