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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광주역 사건’ 이후 학생들의 대책회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11월 3일, 그 날 20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강당에 모였습니다. 먼저 최쌍현 등 부상 학생들이 자신들이 겪은 충돌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였고, 사후 대책을 논의하였습니다. 그 때 오쾌일이 “오늘의 대승리를 신천지의 동포들에게 알 리고 일제 타도의 의지를 천명하기 위한 시위를 전개하자”고 제의합니다. 함께 온 광주농업학교 5학년으로 당시 광주·나주 간 열차 통학단장이었던 최태주가 “광주고 보생만이 조선 학생이 아니요, 우리 광주농교생들도 한 피를 받은 동포이니 생사를 같이하여 시위 대열에 참가하겠다”고 제의하여 참석한 학생 모두에게 큰 박수를 받 았습니다. 이 시각, 졸업생인 장재성은 와타나베 교감을 만나 담판을 짓고 있었습니다. 장재 성은 교감에게 “오전의 불상사는 광주중학교 학생들이 계획적으로 도발했기 때문에 책임은 전적으로 광주중학교에 있다."고 주장하고, "학생들을 그대로 나뉘어 귀가시 키면 도중에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지도 모르니 전체 학생이 함께 나가 몇 개 지점에 서 방면별로 귀가시키고, 마지막으로 열차통학생은 교사들이 광주역까지 데리고 가 는 것이 좋겠다”는 위장 제의를 합니다. 이에 교감은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하고 교 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을 인솔할 것을 지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