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page

45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11월 3일은 일본 근대화의 상징 인물인 메이지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명치절로, 일본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경축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일제는 이 날이 일요일임에도 불구 하고 각 학교에서 기념식을 치르도록 하였 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날은 신사가 있는 광주공원에서 전남 산 누에고치 6만석 돌 파 경축행사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왜 11월 3일이었을까요? 11월 3일, 그 날 17 한편 이 날은 음력 10월 3일로 개천절이었습니다. 학생독립운동의 불씨가 된 비밀 결사 성진회 창립 3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개천절에 남의 나라 명절과 경축행사를 치러야 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서글픈 분노의 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광주고보 학생들은 명치절 기념식에서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를 때 침묵으로 저항합니다. 학생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학교도 단체로 하던 신사 참배 대신 개인의사에 맡기고 귀가하도록 합니다. 물론 한국 학생들은 신사 참배를 거부 합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보도한 최초의 신문기사 동아일보 1929.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