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page

31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나주역 사건’의 주인공 박준채는 1929년 10월 30일 그날을 어떻게 증언하고 있나요? 11·3 학생독립운동의 배경 10 나주역 사건은 흔히 ‘댕기머리 희롱사건’이라고 부릅니다. 나주역 개찰구에서 후쿠다를 비롯한 일본인 학생들이 박기옥, 이광춘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한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신문조서를 보면, 댕 기머리를 잡아당기는 사건은 없었습니다. 11월 9일 광주지방법원 검사의 신문에서 박준채는 후쿠다가 개찰구에서 박기옥의 어깨를 건드리며 나갔고 대합실에서도 앞 서 나가며 어깨를 건드렸기 때문에 후쿠다에게 항의하였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즉 댕기머리가 아니라 어깨를 밀친 것을 문제 삼았다는 것입니다. 후쿠다와 스에요시 도 검사의 신문에서 역시 댕기머리 사건에 대해 진술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댕기머 리 희롱사건은 “신동아” 1969년 9월호에 쓴 박준채의 회고록 ‘독립시위로 번진 한 일 학생충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나주역 사건’은 11·3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박준채(1914∼2001)는 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주역에서의 희롱사건에 격분 한 그는 일본인 학생들을 꾸짖었습니다. 이를 일본인 학생들이 모욕적인 언동으로 맞서면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간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다툼이 발단이 되 어 1929년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납니다. 박준채도 시위에 참여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연소자라는 이유로 기소 유예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박준 채는 광주고보에서 퇴학을 당합니다.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박기옥(1913∼1947)은 나주 출생으로, 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역 사 건’의 주역입니다. 이후 시험 거부·백지동맹 등 항일시위에 참여하다가 강제 퇴학당 하고 3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박기옥은 암태도 소작쟁의의 주역인 서태석 의 며느리이기도 합니다. 박기옥은 2019년 대통령 표창을 받아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았습니다.
32page

11.3학생독립운동을 이끈 학생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