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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세 차례의 맹휴투쟁으로 학생들의 저항의식은 더욱 높아집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 은 것이 1928년 6월에 일어난 ‘이경채 사건’입니다. 1928년 3월 28일 밤, 광주고보 5학년 이경채는 친구인 박병하·윤해병과 함께 송 정리의 보통학교에서 등사판과 잉크 등을 박병하의 집으로 옮겨왔습니다. 4월 초 이 경채는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선언서와 격문을 인쇄하여 광 주 역전 파출소, 광주고보 앞, 송정리 일본신사 앞 등 10여 군데에 붙이고 도내 각 중등학교와 경찰서 등에도 보냅니다. 경찰들은 경악하면서 주동자 색출에 나섰습니 다. 두 달 여가 지난 6월 8일 이경채가 체포됩니다. 경찰은 사건 내용을 바로 광주고 보 시라이 교장에게 통보합니다. 화가 난 시라이 교장은 재판이 열리기도 전인 6월 19일에 이경채를 퇴학시켜 버립니다. 이 사건은 광주 지역 대맹휴 투쟁의 발단이 됩 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이경채의 퇴학 이유를 밝히고 재판 결과 무죄가 되면 복교시킬 것 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시라이 교장은 한마디로 거절합니다. 학교 측과 대화가 불가 능하다고 판단한 학생 대표들은 맹휴투쟁을 결의하였습니다. 졸업반은 맹휴에 가담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경채와 같은 학년인 5학년 학생들도 참여하기로 합니다. 1928년 6월 26일 아침, 1학년을 제외한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교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고 맹휴투쟁을 결의합니다. 1928년 대맹휴 투쟁의 발단이 된 ‘이경채 사건’은 무엇인가요? 11·3 학생독립운동의 배경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