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page

15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내 땅을 다시 찾는데 걸린 시간 60년 나주에 눈독을 들인 일제는 190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영산포 지점을 설립합니다. 또한 이들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나주 지역의 토지를 강탈하여 일본인들을 이주시 킵니다. 일본보다 훨씬 싼값에 토지를 매입한 일본인들은 나주 지역의 대지주로 성 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주 농민들의 궁삼면 토지회수투쟁이 일어납니다. 궁삼면은 지죽면· 욱곡면·상곡면으로, 지금의 영산포, 왕곡면, 세지면, 봉황면, 다시면 일대입니다. 나 주 지역은 1888년부터 가뭄 피해가 매우 컸습니다. 1890년 봄 전성창은 밀린 세금 을 대신 납부해 주겠다고 속인 뒤에 이 토지들을 빼앗아 버립니다. 농민들이 겨우 토 지를 되찾지만, 전성창은 이 토지를 1898년 경선궁(영친왕의 생모 순빈 엄씨)에 팔 아넘겨 버립니다. 이후 일제는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통해 경선궁을 압박하여 200만원 상당의 토지를 8만원이라는 헐값에 사들입니다. 궁삼면 농민들은 토지를 되찾기 위한 처절 한 투쟁을 전개합니다. 소작료 납부 거부 투쟁, 횃불시위, 면민대회 개최, 총독부에 진정서 제출 등 필사적인 활동을 전개합니다. 하지만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 으킨 후 전시 동원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농민들은 토지를 되찾지 못합니다. 해방이 되자 궁삼면 농민들의 토지는 미군정의 신한공사로 넘어갑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야 농지개혁법에 의거하여 농민들에게 분배됩니다. 비록 유상 매수 방식으로 되찾지만 농민들이 내 땅을 되찾기 위해 60년 이상 줄기차게 투쟁한 역사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전라도에 대한 일제의 경제적 침탈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11·3 학생독립운동의 배경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