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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생 3월 29일 수원 기생조합 기생들이 자혜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다가 경찰서 앞에서 멈춰 섰다. 기생 중 한 멍이었던 김헝회 {金침t)가 선두에 서서 띤-세를 부르며 지휘를 하자 일제히 민­ 세를 불렀다. 이들은 병원으로 기-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병원에서 이들의 검진을 거부히-자 병 원을나와다시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불렀다. 김형회는곧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받았다. 기생들의 만세시위는 수원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3월 19일 진주에서 기생독립단이 태극 기를들고 촉석루를 향해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기생 6인을 붙집아 구금했는데 그 중 한 명이었던 한금회{韓짧花)는 손가락을 깨물어 흰 명주 자락에 “기쁘 다, 심천리 강t 써l 다시 무궁화 피누나.”라는 글귀를 혈서로 썼다, 3월 29일 수원에 이어 4월 1 이에는 황해도 해주에서 기생 일동 이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 세 시위를 했고, 4월 2일에는 경상남도 통영에서 금비녀 금반지를 팔아 소복을 만들어 입고 수 건으로허리를둘리 맨 33인이 패극기를들고만세시위를히는등각지에서 기생조합소속의 기 생들이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를 두고 ‘기생조합만세운동’이라 칭힌다. 다.상인 경기도는 경성부를 둘러싼 외곽지역이라는 경제적 입지와 개항장인 인천과 고%뇨군, 시흉군, 수원군, 개성군 등의 상공업이 발달되어 있었다. 지역민의 구성도 중소상인이나 자영업지-, 노 동자등이 많았기 때문에 시위운동의 주도에도 관여하였다. 예부터 인-성 유기와상업의 중심지 였던 안성 장터의 상인들은 일제히 폐점에 들어갔다, 상인들은상점을 폐쇄했을뿐 아니라 적 극적으로 생업을 제쳐놓고 시위에 침여했다. 시위에 참가히는 사람들의 생업은 다OJ= 했다.‘ 생선 장수 이경수 (당시 28세 ), 음죄점 주인 이성옥 {33 세), 자전거 수선업 김재룡 {22세), 밍컨싱- 김정현(·Vi 세), 구두상 김성문 (29세), 날품팔이 서순옥 {36세), 담뱃대 직공 임일봉-(28세) 등이었다. 경기도 사편찬위원회‘ 앞의 책‘ 293쪽‘ 한국민족 문화대액과 기생조합만세운동 침 조 경기도 사편찬위윈회, 앞의 책‘ 332쪽 480 VI . 활 용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