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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힌- 3월 30일 오전 11시 3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읍내를 향해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일행 은읍내길 중간기-채리 앞들뺀l서 일본 기마병과 맞부딪혔다. 일제 헌병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3명이 현징써l서 순국히고 다수의 부싱-자기-발생하였으며 3명의 주동자가 피체되었다. 한편 신북면 시-무소 앞에는 신북면 일동면(-셔떼i) . 이동면( -싸|피) • 영중면 등 인근 주민 2천 여 명이 독립선언 집회를 갖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헌병들의 무차별 빌-포로 시위 대는해산하였다. 가산면에서는 3월 30일 최석휴 (崔쇄샤)기- 중심이 되어 1,000명이 모여 시위행진을 펠였으며, 소홀띤 주재소를습격했다. 최석휴는총에 맞아 헌정에서 순국하였다. 4월 1일에는 일동띤 기산리(機山믿)의 주민 2백여 명이 독립민세 시위운동을 펼쳤고, 4월 3일 에는 신북띤 삼정리(三政里)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있었다. 같은 날, 일동띤 조방리(써검뽀)의 주민 5백여 명과 노곡리(뼈까및) 주민 4백여 명도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히-였다. 영북면 자일리 시는 안응건(갓l펜il:)은 시위운동을 더욱 확신-시키고지- 태극기 25장을 만들어 각 집에 게OJ'하도록 히-였다. (18)안성지역 :) . l운동 가. 읍내먼 3월 11일 읍내에서 50명의 시위가 있었다. 3월 12일에도 시위 움직임이 있었으나 사전에 저 지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시위가 3월 30일부터 전개되기 시작했는데, 그 며칠 전부터도 소규 모 시위는계속있었다. 3월 30일 시위기-본격화되었는데 읍내면 동리-서리-장기리에서 500-600명이 조선독립운 동을 외치며 읍내를 시위하다 군청에 쇄도했디. 군중은 지정 무렵끼-지 경찰서에 투석하고 면사 무소와 군청을 공격했다. 이날 인성장터 상인들은 일제히 폐점하고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 다. 판결문에 나타나 있는 침어지들을 보면 읍내면 서리 생선징수 이경수(杰싸테 28세), 음식점 주인 진공필, 자전거 수선점 김재룡<~1'En~. 22세), 밍-건상 김정헌(싸1E鉉. 써세), 구두상 김성문(金 1tx:.Jc. 29세)이 있고, 그밖에 날품팔이·직공·고용인들도적극죠썩했다. 3월 31일에는 읍내에서 3,000명의 시위군중이 군청과 면사무소를 습격히-고 피괴하였으며 등 3. 경기도 3 1운동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