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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용인지역 :) . l운동 용인군에서는 3월 말에 들어서 만세시위가급격하고 활발하게 일어났다. 3월 28일 용인군 수 여띤 유방리에서 500명의 농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여 55명이 검거되고 1맹이 사망했다. 이날 수여면 금량장리에서도 300명 농민이 민세시위를 벌였다 . 3월 30일 금량장리 읍내에서 2,000 명의 시위가 있었는데, 일제의 발포로 2명이 사망했다. 3월 28일 용인군 모현면 왕산리에서 400명의 평화적인 시위 3월 29일에는 내곡리에서 100 명의시위가있었다. 3월 29일 내시면 남곡리 천주교도 힌-영규{센.圭‘ .J7kli)와 김운식(싼T-Ni.. 21세)이 100여 명의 이 민들을 규합하여 양지리까지 시위행진을 히-였다. 3월 30일 기흥띤에서는 300명이 히갈리 깅카 평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부론 후 읍삼면 읍내 에 진출히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30일 용인군 수지면, 읍심-면에서 천도교인, 농민 1,5001령이 헌병의 제지에 불응하며 격 렬한 시위를 전개했다. 헌병의 발포로 2명이 사밍-하고 3명이 부싱-했으며, 35명이 검거되면서 해산했다. 수지면에서는 3월 28일 고기리(힘땐) 구장 이덕균(李f펀均. 41서1. 농업, 무종교)이 안종각의 권유 를 받이- 시작했다. 그는 이튿날 동네 사환을 시켜 이민 약 100여 명을 규합하고 안종각에게서 받은 태극기를 휘두르며 동천리로 가서 동천리 300여 명의 군중괴- 함께 풍덕리 수지띤 사무소 로 몰려가 만세를 외치고 다시 읍심면 마북리로 기려 하였다. 이에 헌병과 대치하여 완강히 저 항하다가오후 2시경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안종각이 피살되었다. 3월 31일 외사면에서 3,000맹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면사무소 헌병주재소를 습격했다. 일 군의 발포로 1명이 죽고 익;간 명이 부상했다. 4월 2일에도 외사변에서 500명의 농민들의 공세 적시위가일어났다. 3월 31일 이동띤 송전리에서 700명의 농민이 펑회-시위를 벌였다. 이날 원삼띤 시-임-리에서 300명, 송전리에서 300명의 시위가 있었고, 4월 2일 원삼면에서 500명의 시위가 있았으며, 남 곡리에서 100명의 시위가 있었다. 3월 31일 남사면에서는 면사무소를습격하고 면장을꿀어내 시위대의 선두에 세워 송전리 헌병 3. 경기도 3· 1운동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