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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하기도 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는 대한제국 관료탬게 직-위나 재물로 회유하였고, 김석진 선생에게도 이를 권유하였다. 이를 치욕스럽게 여긴 김석진 선 생은 1910년 9월 8일 음독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김석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추서하였다. 4) 현황분석 -현황 · 한말 형조판서를 지낸 김석진 선생은 국권 피탈 이후 자결하였다고 한다. 김석진 선생의 묘소는 1993년 용인시 원삼면 죽능리로 옮겨졌다고 힌다. · 선생의 현재 묘소는 죽능2리 미을회관을 지나 진밭괄11서 새골 방향으로 40뼈가량 올라 가면 김석진 선생의 문중 묘역이 나타난다. 선생의 묘역은 최상단의 바로 아랫단에 조성되 어있다. - 현재 선생의 묘에는 비석과장명등등의 석물이 조성되어 있다. -문제점 · 선생의 묘역 입구에 고불상 및 창고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 항일유적 주변 경관과 맞지 않는떤이있다 · 문중의 선영이이서 일반인이 접근히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개선점 · 묘역 입구에 동선안내판과묘역 주변에 항일유적안내판 설치가 필요해 보인다. 5) 활용가능성 - 김석진 선생의 묘소가 있는 죽능리에는 항일유적이 3개소 있다. 오의선 선생 생가 터와 오 광선 선생 생가 터, 심악학교 터가 그것이다. 김석진 선생 묘소를 중심으로 빈-경 1.5km 안 에 위치해 있어 이를 연계한 항일역사 탐방코스의 개발이 가능하다. 한편, 유적의 중심이 830 Ill ‘ 독립운동 부동산 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