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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수원 지역 3 · 1운동 가. 수원 읍내 딩-시 수원군은 오늘날의 수원시와 회성시 오산시를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이병헌(양써파)의 r 3· 1운동비사 {二 -D페IJM·‘~」)」에 따르면 서울시위가 시직-되변서 바로수원에 파급되어 3월 1일 수원북문인-용두각[I때江|η]에 수백 명이 모였다. 경찰이 제지하자이리저리 흩어지는척 히-다가 만세시위가시작되었다. 만세소리를듣고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이때 정안띤과우정띤 천도교 인과광무황제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상경했다돌아온인시들도적극적으로시위준비에 들어 갔던것으로보인다. 3월 16일 읍 내 장닐-에 팔달신- 서장대외 동문안 연무대에 수백 명씩 모여 민-세를 부르며 종로 늘 통과하여 시위행진을 했다. 경찰이 소방대와 헌병과 협동으로 시위를 제지하고 주도지 를 검 거했다. 시내 상인들은 전부 상기-문을 걸어 잠그고 무언의 시위를 했다. 일경은 검거하였던 시­ 람들을 석빙 F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날 11시경 북수리(」C水'll)에 있는 천도교에서는 서울 태회관의 민족대표 독립선언 을 지켜본 이병헌이 교구에 있다는소식을듣고교인이 모여 들었다 . 이들이 서울의 정세를듣고독립운동 비용부담을 논 의하던 중 소벙-대와 일본인이 소방용 갈구리외- 팽이를 들고 대문을 부수고 쳐들 어왔다. 이들이 휘두른 갈구리외-팽이에 김정모(金l다·) ·안종환짧이뺏) ·안종린(/샀1懶) 홍종걱­ (파l따Ji)- 김상근(안相센) - 이병헌(삼며파)이 중상을 당하였다. 이날 빔-12시 반경 일인들은 삼일여 학교도습격했다. 다행히 숙직원뿐이어서 사무실만파괴하였다. 3월 23일 수원역 부근의 서호(Ii때lj)에서 700명이 시위를 벌이다가 수원역 앞에서 일경괴- 헌병 대 및 소방대의 제지를 받고 해산했다. 3월 25일 수원 읍내에서 약 20명의 시위가 있었고‘ 이튿 날인 3월 26일, 전날의 시위에서 6명을 붙집L 아 간 데 헝의히여 이침부터 상인들이 상점문을 걸 어 잠갔다. 3월 27일 들어서는 전 상점의 약 4할인 60호기-문을 닫을 정도로 확산되어 갔다. 경 기도장관은 3월 27일 정무총김에게 디음과 같이 비밀전문(빌제293호)으로 보고했다. “수원에서는 조선인 접포는 어저1(26일}부터 약간 폐점하고 있었으나 오늘 아침에 01르러서는 그 수가 증가하여 약 60호(전 상점의 약 4흘뻐| 해당함)에 들녕f며 폐점의 원인은 그저께 25일 만세 80 II . 경기도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