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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방민들이 무슨 일이 전개되고 있고 자신들도 무엇을 해야 히는지 알게 되지- 총칼 앞에 서 맨손으로 독립을 요구히는 한국민의 용감한 시위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요원의 불길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새롭게 그리고 격렬하게 피어났다. 그 중에서 가징- 줄기차고 격렬하게 전개 된 곳이 경기도지방이었다. 제국주의 일본의 한국 지방민에 대해 관료와군과 경찰에 의한수직적 일원적 · 일방적 지배에 대항하여 지방 민중들은 학교, 교회, 시장의 그나마 남아 있었던 수펑적 공간을 활용하여 대항 했다. 촌철도 갖지 못한 민중들은 만세시위를 진행해가면서 독립운동의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발견해 확장해 갔다. 그중에는 야간산상햇불시위라는 것도 있었다 독립운동 시간을 야조버l까 지, 공간을신-상으로까지 확대한창조적인 시위방식이었다. 상인들이 철시시위도 있었다. 침여 계층도 다OJ하고도 광범하게 발전해가 기생들도 시위운동에 죠얘했다. 이리하여 경기도 지역 은전국에서 가장치열하게 만세시위를벌인지역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일제의 무자비한탄압으 로 혹심한 어려움을 겪기도 히-였다. 4월 15일 일어난 제암리 교회와 주변 일대의 피의 학살사건 은 대표적인 예다. 일제 수비대는 제암리 교회 현정에서 23명, 인근 고주리 등지의 주민들까지 합하여 37명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각군별 시위 상홍L을 보면 다음과 같다. (1)개성지역 3· l운동 개성에는 3월 1일 이전에 「독립선언서(獨立宣득딸)」가 배포되었다. 남감리교 전도시-인 김지환 (金智爛이 서울과 연락을 취했고 그는 파리강화회의 등에 보낼 독립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전 달하기 위해 신의주로 가고 목사 강조원(웠)J遠)이 「독립선언서」 200장을 개성에 배포했다. 기독교 남감리교 여지- 전도시-인 어윤희(魚允페 · 신관빈(1t1파秘) 등은 송도면의 유치원 교사 권 애라{빠쫓泌로부터 「독립선언서J를 전달받F아 3월 1일 송도면 만월정(i1펴n alT)과 북본정(北木ITTT) · 동본정(땅찌HT) 일대에 「독립선언서」 2,000장을 배포하였다. 최초의 시위는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반 군중이 협세하여 1,000여 명에 달히는 인원이 침여하였다. 또한 1,500여 명의 군중들이 남산정(빼川lllJ)의 과자업 자 이형순(杰펀亨)의 지도아래 밤 12시까지 만세를 부르며 일장기를 불태우고 파출소에 진입하 여 일본경찰과투석전을전개하였다. 64 II. 경기도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