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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고주리의 김성열(이파l烈. 188:3∼1919) 등과 함께 구국동지회(샀패l11L띔·t)를 결성하여 조직 적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19년 3· l운동 당시에는 인근 주민들과 함께 3월 25일부터 4월 5일까지 지속적으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특히, 4월 5일에는 발안주재소를 습격히­ 기도하였다. - 이후 홍원식은 독립만세시위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수원경찰서에서 고문과 구티를 당하고, 열흘 간의 구류 끝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4월 15일 일본군의 제암리 학살사건 때, 제암리 교회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홍원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 였다. 4) 현황분석 -현황 · 일본군이 이전까지 인근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제암리 주민들에게 학 살을자행할 때 순국한홍원식 선생의 집터이다. - 제암리는동쪽으로 3· 1운동당시 변화하였던 발안리가위치해 있으며, 인근에는서해안 고속도로 발안1C를 비롯하여 39번국도, 82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 선생의 집터는 당시 일제의 만행이 저질러진 제암리교회 터에 인접한 제암길 68번지에 위 치해 있다.(제암리교회 티에시 사북쪽 1 10m) 선생의 옛집은사라지고 없으며 그 장소에는 신축기옥이 들어서 있다. -문제점 홍원식 선생의 옛집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현재 신축기옥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이 찾아 기는데 어려움이 있다. 집 주변에 역사적 장소로서의 성격에 맞는 훗말이나 안내판을 설치 히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 개선점 · 제암리교회 및 순국기념관과 연계하여 제암리 역사탐방코스 개발과 함께 선생의 집터 주 2. 경기 서부 건조물 및 터지 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