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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이동하여 민긍호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13도 연합의진에 참여하였다. 강원도 홍천사람 김춘수는 부하 200명을 이끌고 양평을 비롯한 광주 가평 홍천 등 경기도 와 강원도를 념니들며 활동하다 1908년 4월 기-평군에서 체포된 후 탈옥히-여 디-시 활동하다가 1909년 12월 일제의 대대적인 의병탄압으로 벼랑 끝에 몰려 지수하였다. 최태평 부대 300명도 %탄을 근거지로 히여 활동하며, 1907년 8월경 서울을 습격할 목적으로 남종띤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기도 하였다. 구한국군 정위였던 권중식(洲'I때)도 %탄을 근 거지로 해산군인들과산포(山抱)들로 구성된 의병을 조직하였다. ι 이천방면 이천 출신 김봉기와 양지 출신 임옥여는 동지를 규합하여 이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천읍내의 순사분파소와우편취급소등을습격하고, 광주·용인·죽산-양근등지로활동 영역 을 넓혔다. 음죽과 장호원에서는 정봉준과 방인관 등이 이끄는 의병부대기- 장호원을 습격히여 일본 군경에 상딩한 타격을 주었으며, 이후 관동창의군에 가팀하여 13도창의대진소의 일원으 로 항쟁을 이어갔다. 특히 방인관은 서울진공작전이 좌절된 후에도 1909년 후반까지 경기도 일 원에서 활동하디-가 강원도 원주로 이동히-였다. ·γ 여주방면 민비의 고향 여주는 비명에 간왕비로 인해 더욱 배일시상이 뿌리 깊어 의병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침여하고탄약과군량을 제공히는등큰힘이 되어 주었다. 강원도 횡성출신 이구채는 1896년 창의한 이인영의 종사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8월 12일 의 병 80여명을 이끌고 여주경무분파소關+|짝했分i@.所)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관을 처단하는 등 여 주·지평 일원에서 활동했다. 민동식-심상옥 심상희 등도여주에서 의병을일으켜 활동하였다. I 안성 ‘죽산방면 죽산 출신의 정주원(쨌1세原)은 처음에 서용범 의병부대에 가담했다가 독립하여 경기도 안성 등님부지역을중심으로활동하였다. 그후충남당진을 비롯힌 변천·서산·해미와 경기 닙부의 2. 경기도 국권회복운동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