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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조 선생은 1919년 35세기- 되던 해 이천 3·1 만세운동에 침여힌-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군정부(人꾀떤政JH)에 가 I ~ 입하였다. 이후 대한군정부 연락기관 설 치에 필요한군지금모집을위해 서울로 돌이왔으며 1920년 1월 2일, 낙원동 부 호 신왼식에게 군지금 지원을 약속 받았 다. 또한 동월 25일 조정윤의 집을 습격 하여 군챔 등을 틸-취하였다. 히-지만 일제 강절기 당시 대전형무소 정문 (대전광역시) 12월 28일 고향인 이천군 율면 총곡리에서 은신하던 중 독립단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 김원조 선생은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후유증으로 1923년 4월 15일 39세로 순국하였다. 이 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4) 현황분석 -현황 · 이 유적지는 김원조 선생이 태어난 생가터이자 독립운동 딩-시 체포되었던 이천군 율면 총 곡리에 위치해있다. - 위치상으로 장호원읍 남쪽으로 백족산 남쪽 청미천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데 충청북도 음 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10여 가구기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미을로 서쪽에 임오산을 기대어 동향해 있는 포가실 미을이다. 장호원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증원대로)에서 응천을 건너 임오산로를 따라 가면 굴바우들 을 지나 포가실 마을에 다디를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총곡 1리 미을회관이 위치해 있고, 마 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띤 김원조 선생의 생가터에 다다를 수 있다. 1. 경기 동부 건조울 및 터지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