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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부터 ‘비밀리에 조선에 잠입하여 은 행과 금융조협에서 군자금을 징빌하리j는 명령과 함께 권총 1정괴- 실탄 150발을 받 아 동년 2월 23일 장호원 조부 이은식의 집에서 거시를준비한다. - 동년 3월 30일 오후 1시 30분 경 이선룡 선생은동일은행 장호원 지점을습격하여 ‘모두손을들어라. 본인은강도가이-니라 만주에서 온 혁명군이다.’라고 하면서 거 금 1만 2.175원을 탈취했다. 거금이 탈취 되고 일제 경찰은 경기도와 충청북도 전 역에 비상경계망을 펴고 추적하였다. 이 선룡 선생은 충주군 소태면 청계산에서 노숙한 후 옷을 갈아입고 원주 방면으로 가다기- 검문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 호원지서 순경 2명괴- 민-나 총격전이 있었 으며, 일본 순경과 조선인 순경에게 중상 을 입힌다. 도피하던 이선룡 선생은 결국 4월 4일 오후 3시 경 원주군 건등면 반계 리(남한강 지류)에서 체포되었다. 이선룡 선생은 1932년 5월 23일 경성지방 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고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40년 2월 9년 5개 월로 감형되어 출옥히-였다. 그 후 고향에 들러 민주로 간다고 떠난 이후 소식을 알 수없다. 동일은행 외관 (「동아일보」, 1932년 3월 30일 기새 동일은행 내관 (「동아일보」, 1932년 3월 30일 기사) 이선룡 선생 연행 장면 ('동Of일보」, 1932년 4월 11 일 기사) 1. 경기 동부 건조울 및 터지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