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page

위는 3월 31일 같은마을에 시는김명규선생의 집에서 거사준비모임을갖고, 김영익 선생 이 거사의 취지와장소를 알리는사발통문을 작성히여 같은 날 집집마다 이를 회림-시켰다. - 4월 1일 신둔면사무소 앞에 약 500여 명의 면민들이 모여 들자 이상혁 선생이 독립선언서 를 낭독하고, 서기창 선생이 만세를 선창함으로써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행렬은 이천읍 내로 향히였는데 군중이 수천 맹에 이르렀으나 이천 주둔병이 총칼로 강력히 제지하여 모 두해산되었다. 이날빔에는신둔면 모가면·백사면 대월변에서 봉회를올리며 시위를계 속했으며, 이것이 마침내 이천군내 연합시위로 전개되었다. 4) 현황분석 -현황 - 이천 시내에서 3변 국도(경충대로)를 따라 곤지암 방향으로 가다보면 첫 번째 민나는 면소 재지가 신둔면 수광리이다. 소정교차로를 지나 약 330111 가다보면 신둔면사무소에 이르게 된다. 1919년 4월 1일 독립만세 시위지는 신둔면 수광리 면소무소 터라고 한다. 이천방면에서 보띤 면사무소는 신둔면 수광리 진입부에 위치해 있는데, 주택과 상가 등은 면사무소 북쪽에 자리히-고 있다. · 면사무소는 현재 사라지고 없고, 현재의 건물은 신축한 것이다. 띤사무소 입구에는 옛 비 석들(현지 조사 멸요)이 한쪽에 모여 있고, 면사무소 안쪽 쉽터에 ‘신둔면만세운동기념비가 가세워져 있다. · 주변으로는 주택들이 모여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 전답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시골 면소 재지이다 . - 경충대로와 경강선 신둔옛촌역(예정)이 있어 이곳으로의 접근은 우수한 편이다. -문제점 · 면사무소 내에 기념비가 있어 편의시설과주차공간등은문제기 없으나, 기념비가구석에 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찾기 어렵다. 기념비 역시 형식적으로 세워져 있고 딩-시 사건 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284 Ill. 독립운동 부동산 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