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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태극기를 휘두르며 오학리까지 독립민세시위를 전개하였으니 시위군중이 오학리를 지 날 무렵 일제의 발포로 시위대열은 해산되었다. 이로 인해 이원기 ·최영무·원펼희 선생 등 10여 명의 시위 주도지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모두 옥고를 치르거나 태(감) 90도 의처분을당하였다. 4) 현황분석 -현황 · 서쪽으로 야트막한 신{당모루)을 기대고 동쪽으로 금당천을 끼고 있는 당우리 남쪽 끝자락 에위치한 3·1운동민-세시위장소이다. · 여Ool::z로와 도예로가 만나는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내면사무소와 북내우체국 등이 당우리의 중심에 있다면 공북학교 터는 남쪽의 한적한곳에 해당한다. · 현재 비닐하우스와 주택 한 채가 있고 컨테이너와 건축폐자재기 널려 있는 상황이다. 그 주변으로는가옥과상업시설이 여잉깅로를 따라들어서 있다. · 현재 이 필지의 지목은 238전괴- 238-1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점 · 이곳에 3·1운동만세시위장소임을나타내는시설물이나안내판이 없고주택이들어서 있 으며, 전체적으로 어수선한분위기를지이낸다. -개선점 · 이곳을 정비하고자 한다면 여주시 치원에서 토지를 일부 매입하여 기념비 등의 시설을 설 치히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5) 활용가능성 -북내면사무소에서 공북학교 터에 이르는 길을 3· 1운동길로 정비하여 지역 특화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판딘된다. 242 Ill . 독립운동 부동산 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