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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천지역 .J·J운동 이천군 만세세위는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 6일간에 일어났다. 시위는 적게 일어났으나 양 싱은과김L하고 격렬했다. 첫 시위는 마장띤(써L長1fli)에서 3월 30일부터 4월 1일끼-지 3일긴 계속되었다. 3월 30일 마장면 오천리의 박종설(에、::Hu.만) 등 이 주도하는 가운데 오천리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를 부르며 펑회적인 시위로 끝맺었다. 둘째날은 조방리(ι廠믿)에서 천도교도 250여 명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오천리까지 행진하는 과정에서 350명으로 늘어났다. 오천리 주재소 헌병들은 일본군 보병의 지원을 받아 공포를 쏘 며 해산시키려 히-였으나시위대는투석으로맞섰다. 이에 일본군은착검을하고총검을휘둘러 20여 명이 지장찌1](%,1)을 입었으며 2명이 체포되었다. 4월 1일에는 전닐의 일본군 만행에 분개하여 신둔띤 미정면, 백시띤, 모가면, 대월면, 호법 면, 읍내면의 7개면 연합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신둔면 수굉리(水펴파) 면사무소 앞에 500 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읍내로 행진해 나이-갔다. 이천 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총칼 로강제해산하였다. 4월 2일 마장띤 덕평리(1펀t'F.'Ii)를 비롯하여 모기면·백사면·읍내면·대월띤·호법면 등 6개 면 에서도 주로 동리 산에 올라기 봉화시위를 전개했다. 4월 3일 이천군 내 각 띤에서 산발적으로 독립만세 시위기- 일어났으며, 부발띤(λ까|피)에서도 시위기- 있었다. 4월 4일에는 청미면(ii!값1ILi) 주민들이 。pJoj] 백족산정싱써1 올라봉화시위를전 개하였다. 그러지- 인근 여러 면의 주민들이 각기 100여 명의 시위대를 구성히여 동시 다빌의 봉 화시위를 벌였다. 이를 해산시키려고 일본군이 출동하자 면민들은 산위에서 돌을 던지며 일본 군경에대항하였다. 또 4월 19일 오전 2시 부발면과 강원도를 잇는 옥하교(;치Qf術)가 불에 타 절반이 소실되는 사 건도있었다 (.20) 진위시역 .3·1운동 3월 9일 현덕띤 각동리에서는신에 봉회를올리고 만세를불렀다. 인근동리에서도 호응히여 3. 경기도 3· 1운동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