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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관아와 그 주변에 일본군 20여 이 대기하고 있다가 시위대가 몰려오자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이에 흥분한 군민들은 투석전으로 맞서 군수 박우양(朴嵎陽) 부자가 희생되고, 일본인 2명이 참살되었으며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후 일본 군경이 증파되어 각 마을마다 군민들의 동정을 감시하는 한편, 주동자들을 색출하여 검거하였다. 성우경은 체포되어 경기재판소에서 주모자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서대문교도소에서 복역하였으며, 2년 후 한성재판소에서 15년형으로 감형되었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하는 천추경절(千秋慶節)을 맞아 평리원의 기결수석방령(旣決囚釋放令)에 따라 고령임이 고려되어 특사로 풀려났다. 출처 : 광명시 디지털광명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