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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이창선 선생은 서기 1859년 9월 8일 상서면 봉오리에서 부친 이규정공과 강릉최씨 사이에 장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품성이 강직하고 지덕을 겸비하여 봉오리 구장으로서 국운의 쇠진을 노심초사 한탄하여 마을회의에서 오는 장날에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고 옥양목으로 5000장의 태극기를 만든후 통문을 보내어 인근 마을사람들을 규합 1919년 3월 28일 이날 이른 새벽에 봉화산에 올라가서 봉화를 올리고 3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상서면사무소를 향해 시위행진하여 면장과 면서기를 잡아 만세를 부르게 하는등 폭력 시위를 하며 구운리 논미리 신대리 신풍리에서 주민을 더 모집하여 1000여명과 함께 행진중 신읍리 막우내미에서 일본헌병들과 싸우다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어 피체되어 같은 해 9월 18일 경성 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도바아 옥고를 치렀다. 총상의 후유증으로 모진 고생끝에 1939년도 세상을 때났으며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기리어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자손으로 ...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