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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지역에 활어져 살고 있던 한국 교포도 국내의 3 ·1독쉽만세운동에 호 응해서 모두 궐기하였다. 이들이 국내 만세운동의 소식을 원동 통신원(팩東通 {름꾀) 현 순을 통쐐서 전해들은 것은 3월 19일이었다. 구내 운동 소식을 들은 대한인 국민회 중앙총회(太햄人國民會I 1:1央總會)에서는 미국과 멕시코, 하와 이 재류동포 전체 대표회를 열었다. 이 회에서는 앞으로의 독립 운동 방침을 토의하여 12개 항목에 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그 의사를 공포하는 포고문 을발표했다 그리하여 먼저 결의안에 따라 안창호(安뭔팎) 동을 재미 한인 대표로 선 출해서 대한 민국 임시 정부(太韓民國臨時政府) 수립에 참여토록 하였다. 그리고 3월 l'.7일에는 김평 (金平)을 미주 특파원으로 선정하고, 4월 5일 에는 정인과(鄭仁싸) · 황진남(黃鎭南)을 통신원으로 임명하여 중국 상해로, 강영소(쫓永J]꺼) · 황사용(黃思짧)을 하와이 특파원으로 임명해서 호놀룰루로 파송하여 각기 교포의 독립 의식 앙양과 행동을 촉구하도록 유세를 벌이게 하였다. 한편 재미 교포는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동안 필라델피아의 인디펜 던트 홀에서 한인 자유대회 (1댐人自由太쩍)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우리 민 족의 독립 선안과 임시 정부의 수립을 전 세계에 널리 선포하기 위한 것으로, 대회가 끝날무럽 의장서재필(徐載弼)의 주장으로시가행진이 벌어졌다‘ 악대를 선두로 오른손에는 태극기, 왼손에는 미국기를 든 시위 군중은 비 를 맞으면서 행진을 계속하여 독립관에 도착하였다. 임시 정부 국무총리로 선임된 이승만이 조오지 워싱턴 대황령이 앉았던 의 자에 앉은 후 서재필의 개회사로 독립 선언식의 막이 올랐다. 독립관장 존슨 의 미국 독립선언약사(美園獨立宣득|略史)가 소개된 후 이승만이 국내에서 가 져옹 민족 대표 33인이 서 명 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 때 미국 독랩을 상징하는 자유의 종이 울려 퍼졌으며, 대한독립만세를 3 제3장_3· 1독렵만세 운동의 전개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