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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김영학(金永學)의 독립 선언 포고문의 낭독으로 시작되었는데, 선언문 의 낭독이 끝나자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이어 유예균(劉禮均) 배형식(裵亨끊)-황지영(꿇,G-;파) 핑 3인의 충렬된 연설을 듣고 1만여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한편 용정에 있는 8백여 호의 한국인 가옥마다 태극기가 게양되어 거센 바 람에 펄럭거리었다. 축하회를 마친 군중은 ‘대한 독립’이라고 대서 특필한 오 장기 (ii文雄)를앞세우고시위 행진에 들어갔다. 이들은 명동학교(明東텔校) 학생대를 선두로 하여 이국 땅의 시가를 시위 행진하였던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r 만세 운동 계획을 사전에 탐지한 일제는 중구 환헌과 교섭 해서 맹부덕(굶富德、)이 거느린 중국 군대로 하여금 한국인의 만세 시위 운동 을 저지하려 하였다 군중의 위세를 꺾을 수 없음을 안 맹부되은 선두의 대한 독립기를 빼앗고 발포 명령을 내렸다 일제의 계략에 말려든 중국 군대의 집중 사격으로 평화적인 시위 군중 18 명이 피살되고, 3〔)여 명이 부상했다. 이처럼 큰 희생자를 낸 한국인 군중들은 제대로 대항하지또 못하고 해산하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만세 운동은 계속 전게되어 17일에 는 용정에서 다시 5천여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 시위를 벌였으며, 두도구 (뼈펴팎)에서는 1만 5천여 한국인이 만세 시위운동 일으켰고 또 하얼뻔에서 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혼출에서의 만세 운동은 3월 20일에 발생하였다. 이 날 오전 6시 반경, 이 곳 한국인 집에는 태극기가 게양꾀고 상가에서는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까지도 철시를 단행하였다. 오전 8시경, 혼훈 동쪽인 동 대인구(싸太A構)에 모인 한국인 시위대는 학생대를 앞세우고 동문(東門) 안 으로들어갔다. 제3장」 3 l독렵만세 운동의 천개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