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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생의 활동은 서울의 만세 운동 햇불윤 전국으로 확산시켜 준 역할을 더욱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그밖에도 각 지방띄 운동에는 농민이 가담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것이 며 지역운동으로서 그 주체가 밝혀지지 않은 곳의 대부분은 바로 농민이 주동 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리고 도시의 상인(때人)은 서로 연합하여 칠시 Cti따il1)를 단행함으로써 일제에 항거랬는데, 그 기간은 보통 3·4일이었지만 1 개월이 넘는 곳도 있었다. 힌편 노동자(勞폐취) 승려 · 관리 CTI’파)는 물론 어 린이 (兒펴) ·거지 (ε人) ·기생(¢/|;)이 주동한 지역도 있었다 이와 같은 운동의 전국적인 파급은 앞에서 본 것처럼 여러 가지 경로에 의 한 것이었고, 지방 각지의 민세 시위는 민족 대표 등 중앙 지도체와 연결이 있 었던 곳보다 이러한 각 지방 독자의 계획과 결행으로 된 곳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그 집회와 시위는 취락(聚*)의 크기에 따라 작으면 수십 영, 수백 명의 경 우도 많았다. 또 이 만세 시위는 한 곳에서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일파 (一파) 뒤에 또 일파의 격으로 힘 자라는 대로 계속 궐기한 곳도 많았으니, 서 울의 13차(1차에도 여러 곳)를 비롯하여 해주읍(따州꾀)의 8차, 개성읍(|채城 펀) ·마산부(‘펀1!1府) ·진주읍(쁨州파) ·함흥읍(J야興턴)의 각 7차 등이 그런 대 표적인 예요, 그밖에 면사무소 소재지 정도의 취락에서 3∼4차씩 띨어난 곳도 다수에달하였다. 시위 횟수가 많기로는 경기 · 황해 경남 평북 등의 순이 되며, 부·군별로는 서울 64회를 비롯하여 의주 37회, 시흥(해興) 23회, 고양(!려陽) 22회, 수원 (水폐) 20회, 해주 · 북청(北휩) 각 16회의 순이 된다 또 참기- 연인원이 많기로는 경기·평북·경남‘ 황해 등의 순이 페며, 부 군 별로는 서울 수십만을 비롯하여 의주 약 3만, 강화UL파) 약 2만 4천, 선천(단 ) 11) 2만여 명, 삭주(”1州) 2만여 명 정주(定州) 수만 등의 순이 된다‘ .... [2] 3· l독렵만세운동 46